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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은 빵 고르듯이 살고 싶다.
지금 이 마음. '오늘의 나'에게 딱 맞는 '오늘의 빵'을 찾는 마음. 쟁반에는 아직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풍요롭다. 이대로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빵집을 나간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던 회의 시간의 내가 떠올랐다(물론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내 손으로 고를 수 없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인생 같았는데 그 순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나답다고 느껴진다.
'당연히 이쪽이 맞아.'
아직까지 빈 쟁반을 든 처지이면서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되었든 내 삶의 온갖 선택 사항들도 이런 마음으로 고를 수는 없을까?
'아직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쟁반을 든 나'라는 인물로 한 발 한 발 나긋하고 점잖고 구수한 당당함을 지니고 싶어졌다.
물론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만, 오늘 하루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 정도는 '어차피 안 고를 빵'이라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어떤 빵집에서는 빈 쟁반인 순간이 오히려 반짝이니까.
-25쪽~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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