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윤동주, <병원> 전문-
다른 사람은 몸이 아프면서 동시에 삶이 아픈 사람이다. 젊어 아픈 사람은 더 그렇다. 쌓기도 전에 이미 무너져버린 죄, 때문에 목이 가늘어진 사람들. 더 이상 쌓을 게 없어 손으로 허공을 더듬는 사람들. 그들은 삶의 목록에서 비켜나 있는 자, 열외자다.
윤동주의 시<병원>의 화자도 비켜선 채로 자신의 외로움을 관찰하고 있다. 그의 시선과 어투 때문에 그가 피로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삶에 지치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피로하다. 잠자리 날개의 무게만큼만 보태도 휘청거릴 것 같은 몸과 마음. 의사는 그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다. 늙은 의사는 젊은 환자의 휘청거림을 모른다. 원인을 알 수 없이 깊어진 병은 환자를 피로와 외로움 속에 잠식시키고, 삶은 그의 존재를 병적 허언으로 만든다. 그는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운 젊은 여자를 바라본다. 그녀의 병과 자신의 병을 같은 자리에 뉘어보며 몰래, 병을 나눠 갖는다.
뭘 할 수 있을까, 그가. 그저 괜찮아지기를, 괜찮아지기를, 바랄 수밖에.
-50~51쪽 / 박연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창작자의 두려움을 깨주고, 자기 색깔을 찾게 도와주고, 계속 창작할 수 있게 '독려'하는 자이다. 재능의 있고 없음을 판가름하고, 비판과 지적을 일삼는 자는 결코 좋은 선생님이 아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칭찬이 힘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만났던 미술
선생님들 때문에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 111쪽 박연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미래는 어둡고, 나는 그것이 미래로서는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
스스로 외로움을 선언하는만큼 외로운 것은 없다. 외로움은 누군가에게 문득 들키는 것이다. 외로움을 감출 수는 없다. 만약 '나는 외롭다'고 SNS에 글을 올리면 "얼른 장가 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후회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외롭다고 말했던가. 물론 그 사람들도 내게 그런 말밖에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외롭다." 이 표현을 다시는 꺼내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외로워서 입밖으로 빼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여기서 베놈이 생각나는 건 왜지.ㅋㅋㅋ.
프리다칼로<상처입은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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