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독서노트.
팬덤을 만들려면 무조건 디지털만 이용하면 되는 걸까요? 사실 팬덤은 디지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울리는 경험에서 만들어집니다. 제가 항상 언급하는 막걸리가 있습니다. 지평주조가 만드는 지평생막걸리가 주인공입니다. 1925년 창업한 지평주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막걸리 주조 회사 중 하나입니다. 양평의 맑은 물로 술을 빚는 회사인데, 사실 2010년 막걸리 유행이 꺼지면서 매출이 2억까지 떨어져 문을 닫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때 27세였던 김기환 대표가 “아버지, 제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로 한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해서 회사 경영을 시작합니다. 신혼살림을 양조장 옆에 차린 김 대표는 곧바로 사업에 온 열정을 다합니다.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막걸리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SNS 마케팅을 했겠구나, 그리 상상이 됩니다. 그런데 맛이 없는 막걸리로 SNS 마케팅을 강화하면 어떻게 될까요? 더 빨리 망합니다. 악플이 무더기로 달리면서 말이죠. 팬덤의 핵심은 결코 온라인 마케팅이 아닙니다. 먹어본 고객의 경험이 결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김 대표는 우선 맛을 바꿉니다. 그 기준은 고객의 데이터입니다. 김 대표는 5도, 6도, 7도 등 도수를 달 리해 다양한 막거리로 20~30대에게 계속 시음을 합니다. 실제로 이 회사는 막걸리는 6도에 약간 시큼한 향이 좋다는 업계의 관행에 따라 80년 이상을 이 방식대로 만들어왔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전통 막걸리는 6도입니다. 그런데 김 대표는 이러한 관행을 의심했습니다. 분명히 입맛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했죠. 아니나 다를까 시음에 참여한 소비자 대부분이 5도의 달달한 맛을 선택했습니다. 김 대표는 80년의 전통을 깨고 맛을 바꿔버립니다.
(중략)
팬덤은 소비자의 가슴에서 나옵니다. ‘우와, 이건 뭐지?’ 하는 경험이 가슴에서 우러나오면 그때 누군가에게 “너도 먹어봐.”라고 말하고 싶은 심경의 변화가 생깁니다. 팬덤의 진정한 의미는 경험한 소비자가 마케터가 되고 세일즈맨이 되는 겁니다. 그냥 ‘괜찮네.’라는 느낌으로는 그렇게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뭔가 본질이 다르면서도 디테일까지 완벽한 ‘느낌적인 느낌’이 생겨야 그 정도의 팬심을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실제로 지평주조의 홈페이지는 웬만한 디지털 스타트업 회사의 느낌을 줄 만큼 디자인이 세련되고 내용도 깔끔합니다. CEO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지역별로 유통되는 게 상식입니다. 유통기간이 짧아 전국판매망을 구축하기도 쉽지 않고 소주처럼 대량으로 소비되는 주종이 아니라 브랜드화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관례를 깨고 전국 판매망을 구축했고 2021년에는 매출액 400억을 넘기며 불과 10여 년 만에 200배 매출 신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웁니다. 워낙 쉽지 않은 시장이라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점은 강력한 팬덤이 형성되었다는 겁니다. 사실 저도 팬입니다. 막걸리 시키는 자리라면 동반자들에게 꼭 지평을 먹자고 우기는 한 명입니다. 제 가슴도 움찔했었나 봅니다.
- <최재붕의 메타버스 이야기>, 최재붕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96273
팬덤을 통해 성장한 유명한 대학도 있습니다. MKYU라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신생(?) 대학입니다. 유명 방송인이자 강사로 활약하던 김미경 씨가 유튜브를 활용해 세운 대학입니다. 사실 이분은 저하고도 인연이 매우 깊습니다. 제가 《포노 사피엔스》를 처음 내었을 때 이분이 읽고 전 직원에게 선물했다는 유튜브 방송을 내보냈는데, 그 이후로 제 책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면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때 방송은 김미경TV(MKTV) 채널이었습니다. 방송의 조회 수와 광고 효과를 보면서 정말 대단한 팬덤을 가진 분이란 걸 알게 되었죠. 이후로 저는 김미경TV에 나가 디지털 혁명의 본질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상담도 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사실 강의로 수입의 대부분을 채우는 강사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거의 모든 강의가 취소되었으니까요.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며 고민을 거듭하던 김미경 대표는 자신의 강의를 좋아하는 팬덤을 믿고 유료강좌로 운영하는 ‘김미경 유튜브 대학’, MKYU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다양한 투자 방법에 대한 분석 영상과 디지털 혁명에 따라 등장하는 신기술에 대한 유익한 영상들을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제작해 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숱한 어려움을 뚫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교육 콘텐츠는 수능 관련 외 분야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거기다 무료 유튜브 채널은 몰라도 유료 방송은 크게 참여율이 높지 않습니다. 반면 영상 제작비는 만만치가 않죠. 그런데 김 대표에게는 큰 무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140만 명을 넘는 김미경TV의 팬덤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팬덤이 대부분 자기 계발에 열정적인 여성층이었고, 그래서 기존에 다뤘던 영상도 동기부여와 관련한 콘텐츠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다잡고, 아이를 잘 키우며, 성공과 인생의 행복을 찾는 콘텐츠가 채널의 중심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콘텐츠를 채우기 어려웠습니다. 무언가 더 전문적인 내용이 필요했죠. 돈을 내고서라도 꼭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코어 콘텐츠가 필요했습니다. 특히 4차산업혁명 시대다, 디지털 혁명 시대다, 코로나 이후로는 뉴노멀이다 하면서 사회가 온통 변화와 혁신에 들끓고 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녀의 팬들도 이러한 신문명의 지식에 목말라하던 상황이었죠. 엔지니어 출신도 아니었고 디지털 문명에 관한 지식도 많지 않았던 김 대표에게는 큰 어려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난관을 과감하게 뚫고 도전을 시작합니다. 어쩌면 그녀의 도전 자체가 MKYU의 핵심 콘텐츠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고는 멋지게 성공합니다. 입버릇처럼 쏟아내던 “쉰여덟 살인 나도 하는데 여러분이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그녀의 핵심 메시지를 스스로 증명해낸 것입니다.
성공의 비결은 배움에 대한 의지와 치열한 공부였습니다. 자신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을 최대한 학습하고,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라면 무조건 초대합니다. 그러고는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갑니다. 어렵지만 꼭 알아야 하는 분야도 철저한 학습을 통해 분류해냅니다.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거기다가 최근에 각광받는 메타버스와 NFT는 아예 특집 방송으로 다룹니다. 스스로는 철저한 모더레이터(moderator)의 역할을 다합니다. 저도 공대 교수이지만 기술 분야 전문가는 매우 어렵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발표가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학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열심히 공부한 김 대표가 여러 전문가의 발표 영상을 분석하고, 팬들에게 눈높이를 맞춰 잘 설명해줄 최고의 강사를 선택합니다. 자신도 함께 공부하면서 팬들이 어려워할 것 같은 부분, 궁금해할 것 같은 부분들을 감각적으로 잘 찾아내어 정리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모더레이터가 되어 전문가의 지식을 기가 막히게 뽑아내어 자연스럽게 팬들에게 전달합니다. 소비자에게 최고의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저는 2021년 연말에 MKYU 방송 제작에 참여해 그녀가 만든 2022년 트렌드에 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는데, 메타버스와 NFT 생태계에 대한 전문가 뺨치는 통찰력을 보고 순간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저 정도 지식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걸 소화해서 쉽게 전달까지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대단한 노력의 화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도 홀리듯 MKYU 방송 제작에 참여하게 됩니다. 참여하는 전문 강사들끼리 모여 얘기하다 보면 온통 김 대표 칭찬입니다. 우리도 좋은 경험을 얻어 팬이 되는 것이죠.
- <최재붕의 메타버스 이야기>, 최재붕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96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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