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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마음이 불편해지는 책, <불편해도 괜찮아> 김두식 지음

by 이야기캐는광부 2010.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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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하고자 마음먹은 건 책표지에 써 있는 이 문장때문이었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이야기'


어라...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이야기? 설마 인권이야기가 영화보다 재밌을라고..의심반 호기심반으로 냅다 질러버렸다.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책이 자기 입으로 재밌다고 말하는데 '혹여나 실망시키지는 않겠지'하고 말이다.

책을 읽어내려가는 순간 내 예상은 적중했다. 영화속 상황들을 예제로 들면서 그와 관련된 인권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글솜씨를 따라 나도 모르게 술술 읽어내려갔다. 인권이야기가 언제 이렇게 재밌게 읽혔던가 싶다. '인권'하면 왠지 어려울 것 같고 딱딱한 느낌인데 말이다. 

특히 장애인 인권을 설명하면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오아시스>를 예로 든 점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이 영화 자체가 장애인과 전과범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한다. 그 편견에 사로잡힌 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화속에서 전과자 종두(설경구 분)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문소리와)와 알몸으로 사랑을 나누다가 강간범으로 몰려 경찰서에 가게 된다.  그런데 공주는 분명 경찰들에게 글을 써서 종두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었음에도(공주는 신체적으로는 장애인일지 몰라도 지적으로는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종두의 편지를 읽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글을 쓸 줄 알았다.)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종두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사랑해서 그랬다고 사실대로 말해서 무죄를 입증할 수도 있는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저자는 여기서 한번 딴지를 건다. 왜 종두와 공주는 이 영화속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당하는 것으로만 그려지는가하고 말이다. 이 영화속에는 전과범과 중증장애인은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묘사는데, 그 것 자체가 또 다른 편견이 아닌가 하고 묻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힌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듯 하면서도, 정작 영화자체는 그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띄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창독 감독이나 문소리가 뇌성마비 장애인의 외적인 모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대로 재현해내는 데는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뇌성마비 장애인의 내면을 제대로 읽어내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149쪽).

이것은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영화를 보던 당시에는 무기력하게 그려지는 공주와 종두의 모습을 그러려니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편견이었다. 영화속에서 종두와 공주는 경찰서에서 충분히 자신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당당히 밝힌 다음, 주변의 편견을 물리치고 알콩달콩 결혼까지 했을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채 영화 줄거리를 무작정 따라가기만했다. 영화자체가 범하고 있는 오류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물론 영화<오아시스>를 영화로만 생각하면 편하고 뛰어난 작품이다. 영화 시나리오상 그렇게 스토리가 흘러가야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장애인 인권과 연관지어 생각하니 영화의 문제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를 통해 인권이야기를 펼쳐가는 이 책이 재밌는 이유이다.


한편, 장애인을 배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생각과 행동이 오히려 그 장애인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음도 이 책은 보여준다. 미국 근육디스트로피 연합회에서 주최하는 방송프로그램 '텔레톤'의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텔레톤은 텔레비젼과 마라톤을 합친 말로, 텔레비젼을 통해 모금을 하는 (우리나라의 '사랑의 리퀘스트'와 비슷한) 방송프로그램이다. 근육디스트로피로 장애인이 된 환자들을 위해 모금하는 텔레톤은 누가봐도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텔레톤은 분명 모금이라는 좋은 의도를 가진 프로그램이지만,근육디스트로피 환자들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앞장 서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근육디스트로피 환자들을 불쌍하게 그려냄과 동시에, 그들에게 개인의 비극이자  '영구적인 환자'라는 이미지를 씌웠다. 더불어 장애인은 곧 '환자'라는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키고, '장애'를 질병으로 간주하고 장애인을 비정상적이고 불완전한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근육디스트로피 장애인들을 '불구자로서, 정상적이지도 건강하지도 않고, 생동감도 없는 무기력한 인간(154쪽)'들로 그려낸 것이다.

http://www.mda.or.kr/ 한국근육디스트로피 협회- 이 사이트에 접속해서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자칫하다가 장애인은 그저 환자이기 때문에, 남들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질 수도 없고, 그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로만 여겨질 수 있다. 분명 그들에게도 인권을 가지고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말이다.

이 책은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내용에서 내 마음을 마음껏 불편하게 했다. 왜 책제목이 '불편해도 괜찮아'인지 알 것 같다. 그렇다고 매순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장애인을 향한 편견에 사로잡혔는지 알림과 동시에, 그런 장애인도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인격체임을 넌지시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책속 저자의 말을 읽어내려가면서 어떻게 하면 장애인을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데이비드 파이퍼 교수의 말처럼 장애란 정상에 뒤떨어진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남과 좀 다른 특징을 가진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157쪽-

장애인도 일할 의욕과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데 주목한 것이 정상화 원칙입니다.
-159쪽-

가능성 패러다임은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한계를 느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장애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결코 장애 그 자체가 불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중략)
<포르세트 검프>는 <오아시스>같은 환상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검프가 자신의 지적장애를 그대로 안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삶을 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61쪽-

누가 내게 '장애인들을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적이 한 번도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편견에 사로잡혔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 편견들이 금방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이제는 장애인들에대해 편견을 지니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다'라고도 확신할 수 없다. 그건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일테니 말이다.

다만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편견을 버리기 위한 첫 걸음을 이제 막 떼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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