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안에 담긴 재미나고, 신기하고, 슬픈 이야기
제가 들려 드릴 이야기는 세상곳곳에 있는 별의별 ‘종이’들에 대한 것입니다. 종이 안에 담긴 이야기를 찾고자 결심하게 된 계기는 바로 화장실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화장지’때문이었지요. 화장실에서 힘주어 큰(?) 일을 보고 있을 때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최초로 화장지를 썼던 인류는 누구일까?”
절대로(?) 사라지면 안 되는 종이, 화장지
물론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최초의 화장지는 아마도 6세기 이전부터 중국에서 쓰였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말이지요. 이것은 종이로 뒤를 닦는다는 내용이 담긴 육조시대의 지식인 안지추(顔之推, 531 ~ 591)의 기록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종이에는 오경五經이나 선현先賢들의 문장, 혹은 각주가 씌어있기 마련인데, 나는 감히 그것을 뒤를 닦는데 사용할 수 없다."
이 기록을 통해 그 당시 아마도 뒤를 닦는 종이(?)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최초로 화장지를 썼던 사람은 중국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한편, 명나라 홍무제 시대(1368~1398)시대에는 황궁 전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값싼 벼의 깔대로 화장지를 만들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 수가 72만장에 이르는데 그 중 1만 5천장은 황제의 가족들을 위해 쓰였고, 옅은 노란색에 향기가 났다고 합니다. 향기 나는 화장지는 지금으로부터 630여 년 전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머나먼 미래에는 종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몇몇 과학자들은 말하지만, 화장지만큼은 절대로 사라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종이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LG디스플에에서 개발한 휘어지는 전자종이에서부터
▲ LG디스플레이의 휘어지는 전자종이, 무게가 130g 밖에 안된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트랜스포머 종이도 나오고 있는 세상이니, 종이의 생명은 참 질 길 것 같거든요.
진화하는 종이 - 자기 스스로 변신하는 트랜스 포머 ‘종이 ’
트랜스포머 종이는 자기 스스로 변신 할 줄 아는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종이는 자기 스스로 종이 비행기, 종이배등으로 접힌다고 합니다. 미국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 연구팀의 의뢰로 MIT와 하버드 대학교 연구팀이 개발했다지요.
▲ 트랜스포머 종이가 자기 스스로 종이비행기로 접히는 모습얇은 금속판 형태의 이 종이는 스스로 모양을 바꿀 수 있기에 그 적용분야가 다양합니다.
앞으로 이 기술이 더욱 발전된다면 정말로 영화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더불어 우리가 즐겨 읽는 책들에도 이 트랜스포머 종이를 사용한다면, 직육면체가 아닌 비행기로 변신 할 수 있는 책도 출판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한편 6.25전쟁당시, 스스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인공지능 종이가 개발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요? 많은 군인들이 그 종이에 편지를 쓸 수 있었더라면, 그 편지가 하늘을 날아 가족들에게 전달되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지요.
눈물이 떨어지는 ‘종이’ - 1950년 6.25전쟁 당시 학도병 이우근의 편지
그렇게 되었더라면 아마도 학도병 이우근군이 쓴 종이편지도 어머니께 잘 전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재학 중 학도병으로 참전하였던 그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현 포항여고 자리)에서 전사했습니다. 그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줄 한줄 썼던 편지는 그의 주머니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읽어보면 견딜 수 없이 가슴 아픕니다.
▲ 최근에 나이 어린 학도병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포화속으로’가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중략)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중략)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중략)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
그의 어머니가 이 종이편지를 봤더라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흘렀을까요? 세상에 눈물이 나오는 종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우근군의 편지가 쓰인 종이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습니다.
‘종이’는 어린 시절 추억을 담는 앨범 - 학교 소풍때 보물찾기
▲ 소풍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어린이의 모습
아무래도 종이는 그처럼 슬픈 이야기도 담고 있지만, 유쾌한 추억도 담고 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요.
초등학교 소풍때 수건 돌리기만큼이나 스릴있고, 긴장감 넘치는 게임이 있습니다. 바로 ‘보물찾기’이지요. 선생님들이 돌멩이 밑, 나뭇가지 사이, 풀숲에 선물이 적힌 종이를 숨겨놓으면, 아이들은 몸싸움을 벌이며 보물찾기에 나섰습니다. 그때부터는 환호소리와 실망감이 가득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지요.
간발의 차이로 친구에게 보물이 적힌 종이를 뺏긴 적도 있지요. 이렇게 ‘종이’는 어린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앨범입니다. 보물찾기놀이에서 찾은 종이만큼 제 어린시절이 생생하게 뛰놀고 있는 것도 없을 테니까요.
종이 함부로 찢고 구기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지금까지 화장지에서 시작한 호기심으로 여러 종이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문득 안도현 시인의 詩 ‘너에게 묻는다’에 나온 시구절이 생각납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종이 함부로 찢고 구기지마라. 그 안에 재미나고 신나고 슬픈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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