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북한에 대한 내 생각의 변화를 추적한 글이다. (스크롤 압박이 쫌 있으니 끈기 있게 읽어 주시면 정말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을 보며, 다시금 북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한 내 생각은 미묘하게 바뀌어 왔다. 그때마다 항상 3가지 질문이 동시에 내 머리를 엄습해 왔다.
북한은 같은 민족인가?
북한은 그저 사람사는 다른 나라일뿐인가?
북한은 적이면서, 같은 민족이기도 하고, 다른 나라 사람이기도 하다는 건가?
그럴때마다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복잡하고 뭔가 석연치 않았다. 적이긴 한데 같은 민족인 것 같고...어떨 때는 그저 딴나라 사람인 것같고...20대인 내게 있어 북한은 언제나 풀기어려운 주제였다. 게다가 엊그제는 연평도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도 북한 해안포가 수백 발 떨어져 버렸다.
그러면서 머릿속은 분노. 열받음. 증오라는 단어로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여느때처럼 이성보다는 감정이 나를 정복해버린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고 북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다시 한번 그 답을 내려보기 위해 북한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추적해보려는 것이다.
내 짧은 인생에서 '북한'자체가 화두로 떠올랐던 순간은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2단계는 이후 2005년 북한 금강산으로 관광을 떠났던 순간
3단계는 2006년 군대 신병훈련소에서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던 순간
4단계는 2008년부터 2010년 대학교 4학년 휴학중인 지금까지, 북한의 무력도발을 접하며..
단계별로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고등학교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리로 이해하려니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이산가족의 아픔, 동족상잔의 비극, 전쟁의 처참함 등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크고 무서운 것이 내 앞에 있었다.
그리고 몇십년전에는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에 왠지모르게 슬펐다. 왜 이렇게 이 세상에는 싸우고, 죽이는 일들이 많은가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학교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꼬박꼬박하고, 반등수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다. 자율학습 땡땡이와 어떻게 하면 수업시간에 안들키고 어믄짓할까를 더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솔직히 북한은 다른 나라처럼 여겨졌다. 같은 민족이라고는 하는데, 왠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상야릇한 감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가끔씩 텔레비젼에 나오는 북한군의 사열모습과 김정일의 모습을 보며 '쟤내들 왠지 으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수업시간에 6.25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선생님 말씀에 심장 떨렸던 기억도 있다. 더불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과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옛날 일이라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북한은 시험지 답안처럼 결코 단답형으로 맞출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수해서 어렵게 대학에 들어간 후 일상이 너무 심심했다. 20살때 다녔던 학교를 자퇴했기 때문에, 또 한번 신입생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 빼고는 똑같았다. 그렇게 또 한번의 1학년을 보내고 가을이 찾아왔다.
남자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선택한 곳이 북한 금강산이다. 학교에서 비용 일부를 대주어서 싼 값에 갈 수 있었다. 당시 강원도 고성 남북 출입국 사무소를 지나면서 꽤 긴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신원확인을 하는 북측 경비원의 강렬한 눈빛에 쫄았던 기억도 난다. 그 분 눈이 많이 아팠을 것이다.
▲ 숙소너머로 멀리 금강산이 보인다.
고속버스를 타고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한땅에 들어가면서 철로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북한사람들을 보았다. 북한의 집과 길 그리고 산을 직접 눈으로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람처럼(?) 생겼구나. 여기도 우리 산과 들이 있구나. 그래서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 건가..'
그러면서 이질감과 동질감이 동시에 엄습해왔다. 저쪽에서는 권총을 옆에 차고 감시하러 나온 북한 군인들이 우리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꽤 무서웠다. 사진을 찍으려하니, 인상쓰며 못하게 했다. 그때 북한말을 현장에서 바로 들었다. 드라마에서 봤던 특유의 억양을 직접 들으니 여긴 정말 북한이구나하고 생각했다.
또 숙소로 이동하던 중, 창문 밖으로 밭에서 일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보았다. 초등학교 1학년쯤 된 것 같은데 어른들과 섞여 일을 하고 있었다. 철조망밖으로는 북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는데도, 왠지 모를 이질감이 또 한번 내 가슴을 휩싸고 돌았다.
그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북한 사람들...같은 민족이긴 한데...우린 서로 다른 것 같다...'하고 말이다. 모순되는 생각이었지만, 머릿속은 그랬다. 한편 관광일정중에 보았던 북측 서커스단 공연은 정말 감동이었다. 그 공연단 누군가가 마지막에 '우리 통일 되면 다시 만나요'라고 말하자, 뭔가 슬프고 눈물이 글썽거리려 했다. 하지만 대놓고 울 수는 없었다.
▲ 그때 노래를 불러줬던 북측 안내원의 모습
또 전통 노래 한 소절 불러달라는 남한 관광객의 요구에 멋지게 노래를 불러줬던 북측 여자 안내원을 잊을 수 없다. 구슬프면서도 수줍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북한 노래를 듣고 가슴이 찡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북한은 우리와 같은 사람사는 곳이었구나'하고 느꼈다. 이런 나의 생각은 그때 잠시나마 '북한은 우리의 적이'라는 생각을 이겼다.
그러나 북한이 적이라는 생각은 오래지 않아 나를 지배해버렸다. 바로 영장을 받고 2006년 1월에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신병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번 안보교육을 받으며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라는 내용을 주입받았다. 대한민국 군인 입장에서 분명 북한은 싸워야 될 적이었다.
그런데 신병 교육 2주차가 되었을까? 기무대 어떤 간부분이 정신교육을 하러 강당에 오셨다. 그 분이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수백병의 훈련병들에 다음 질문을 던졌다.
"북한은 우리의 적이 맞나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거 말 잘못하면 기무대에 끌려가는 것 아닌가하고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 때 용감한 훈련병 몇 명이 답했다.
"북한은..어쩌고 저쩌고 해서..우리의 적입니다!"
그 뒤에 2~3명의 답이 이어졌는데, 대부분 북한은 우리의 적이 확실하다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미묘하게 그들과 달랐다. 갑자기 손을 들었다. 용감하게(?) 그 간부님께 말해버렸다.
"예...북한은 우리가 싸워야 될 적이 맞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동지로 삼아야 될 적입니다."
그 때 그 간부님은 잠시 생각해 잠기는 듯하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방금 말한 병사, 앞으로 나와!"
순간 X됐다고 생각했다. 말 잘못해서 끌려가는 게 아닌가하고.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전화포상이다. 부모님께 전화하고 와!"
당시 북한은 영원한 적이 아니라고 말한 나에게 2010년도의 내가 놀라고 있다. 그 순간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북한은 적이긴 한데, 영원한 적은 될 수 없다는 생각은 2010년도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그리고 언젠가 북한은 동지로 삼아야 되는 적이라는 생각도 함께..
군제대후 시간은 흘러 2010년 11월이 되었다. 그리고 엊그제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해병대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화가났고, 분노가 끓어올랐다. 민간인이 사는 곳에 고의로 포격을 가한 북한을 용서할 수 없다는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북한 넘들 XX새끼, GXX새끼, SS새끼하며 욕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지금 다시 내게 물었다.
북한은 같은 민족인가?
북한은 그저 사람사는 다른 나라일뿐인가?
아니면 북한은 적이면서, 같은 민족이기도 하고, 다른 나라 사람이기도 하다는 건가?
그러자 마음속엔 복잡한 생각들이 오고갔다.
그래도 2005년 노래를 구수하게 불러주었던 북측 안내원도 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때 일을 하고 있던 북한 아이들도 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북한 자체가 우리의 적이다.
이번 포격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북한 주민들 모두가 우리의 적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적이다.
분노해야 할 대상이다.
북한과 우리는 같은 민족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적인 것 같다...아니..적이다. 북한은 적이 맞다...
북한은 적이면서, 같은 민족아닌가?
그렇긴 하지만...북한은 XX새끼들이다.
언젠가 통일해 한다고? 그건 웃기는 소리다.
그런데....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적일까?
막상 남과 북간에 전쟁이 터지고 나면 무조건 총들고 북한 인민군들과 북한주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겠지...죽거나 죽이겠지...?
모르겠다. 모르겠다....정말.....
오늘 역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말았다.
6.25전쟁이후 6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 그들은 왜 싸웠을까? 싸우고 싶어서 싸웠을까? 죽이고 싶어서 죽였을까? 한반도를 먹으려는 강대국들에 놀아났던 것일까? 전쟁은 누구의 잘못일까? 왜 전쟁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어야 할까?
짧은 생동안, 북한에 대한 생각변화는 이렇게 진행되어 왔다. 변한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은 생각들이다. 그래도 몇십년후 혹시나 남과 북이 통일이되면 바뀌어야 하는 생각들이 아닐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머나먼 미래에 통일된 한반도에서, 한 때 북한 사람이었던 사람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말아야지. 그러나 소중한 목숨을 잃게 만든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킨, 지금 이 순간의 북한에 대해서는 끝까지 분노하고 싶다. 이게 지금 내 심정이다. 몇 십년후 이 글을 다시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도 장담할 수 없다.
2007년 경기도 남양주에서의 군복무시절, 휴전선 최전방으로 1박 2일로 경계근무 파견을 간 적이 있다. 군대에서 군대로 병영체험(?)을 가는 이색 경험을 한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북녘땅을 마주하고, 철야근무를 서보았는데 느낌이 묘했다. 같이 근무를 섰던 한 병사는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여기서 경계를 서다보면, 북쪽에서 산에 부를 지르는 것도 볼 수 있어요. 가끔은 북한 병사가 왔다갔다 하는 것도 보입니다."
최전방의 병사들에게는 매일 매일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경계를 서는 것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만 체험하면 되는 나는 휴전선이 너무 신기했다. 같은 군대안에도 또 다른 세계가 있었으니 말이다.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휴전선 철조망을 실제로 마주하니 너무 차갑고, 슬퍼 보였고, 가슴이 턱 막혀왔다. 철조망 너머로 고라니 한 마리가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세 찬 바람이 철조망과 내 전투복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 고라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듯 하다.
'왜 니들은 철조망 치고 나를 여기에 가둬 놓은거니?'하고 말이다. 그때로 되돌아가면 고라니에게 오히려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이야기하자면 길어...! 그런데 고라니야, 북한은 적일까? 같은 민족일까? 다른 나라일뿐일까?
....아니면...
북한은 적이면서 같은 민족이기도하고, 다른 나라이기도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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