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사람: 경기도 파주시 공장에서 사색에 잠겨있을 LCD씨
안녕하세요.LCD씨!
저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창호지 입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시간여행을 해서 말을 하냐구요?
그건 바로 사물과 사물들끼리는 시공을 뛰어넘어 대화를 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물론 이 편지는 사람들은 읽을 수 없습니다.
LCD씨 당신은 제 글을 읽을 수 있으니 안심하세요.
지금쯤 당신은 LG디스플레이 파주와 구미공장에서
'내 인생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색에 잠겨있겠군요.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보면 무척이나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최근에는 1초에 240장의 영상을 깨끗한 화질로 표현해내는
TV겸 모니터용 LCD가 태어났다고요?
그런데 조선시대사람들이 듣는다면 하나도 못알아들을 이야기네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저도 조선시대에는 정말 최첨단 기술이었다는 사실을요!
예쁜 연예인보다는 나뭇잎 그림자를 담았던 조선시대 디스플레이
저는 10초에 30장의 영상을 은은한 화질로 표현해내는
지나다니는 문 겸 창문용 LCD였으니까요.
꽤 놀랐을 겁니다. 몇백년전에도 그게 가능했는지 의아하시죠?
그렇다면 당신께 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짜잔!!!
바로 제 몸에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저는 문창살에 몸을 기대어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햇살의 시선을 더 즐겼습니다.
드라마속 연예인들보다는 마당에 있는 국화꽃 그림자와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를 사람들에게 소박하게 보여주었지요.
저는 수백년전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소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여인의 다듬이 질 소리, 그녀의 비녀꽂은 아련한 옆모습,
아이의 입김에 흔들리던 호롱불 그림자, 어느 양반의 헛기침 소리,
조선시대 남녀가 살갑게 사랑을 나누는 소리.
깊은 밤 어둠속으로 고요히 파묻히는 한 숨소리,
죽음을 앞둔 한 노인의 괴로운 신음소리,
단란한 조선시대 가족의 화기애애한 웃음소리.
새지저귀는 소리, 저녁노을이 문풍지를 붙잡고 있는 모습,
아침해가 떠오르며 새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모습, 나른한 소울음 소리.
창호지, 우리 옛것을 진심으로 담아내는 삶을 살다
LCD씨,
저는 당신을 이루고 있는 첨단기술만큼이나 가치있는 우리 옛것을,
진심으로 담아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죽으면 전쟁터로 보내졌습니다.
창호지들은 가볍고 질기고 따뜻해서 옷으로 쓰였거든요.
조선시대 선비들은 쓰다버린 파지나 헌책을 모아 변방의 병사들에게 보냈지요.
또 세조 때 김수온이라는 사람은 저를 모아 이불을 만들어 덮기도 했습니다.
추운지방에서는 발에 종이를 감아 추위를 막기도 했고요.
제게는 한 가지 기능이 더 있었던 것이죠.
바로...바로 사람의 따스함을 보존하고,
내 안에 있는 따스함을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해줄 수 있는 최첨단 기능이 말이죠.
LCD씨 , 당신도 사람의 따스함을 보존하는 삶을 살기를...
LCD씨, 당신역시 저처럼 사람의 따스함을 전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차가워져도 기술이 주는 따뜻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시공을 넘어 당신께 편지를 쓴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갈 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안에 사람의 행복, 온기, 사랑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주인양반이 과거시험을 치루고 지금 들어왔네요.
저는 다시 창호지 문으로 되돌아가 제 삶에 충실하며 살고 있겠습니다.
먼 훗날, 시간여행이 가능해지면 조선시대 제가 사는 곳으로 놀러 오세요.
그러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From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특별한 종이, 창호지로부터
1597년 조선시대 경기도 파주시 어느 양반 집에 살고 있는 창호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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