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은 내가 좋아하는 시집중 하나이다. 이 시집을 펼치면 섬진강물줄기로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올 것 같은 상상이 든다. 시집안에는 1번에서 20번까지 섬진강 연작시가 들어있다. 그중에서도 '섬진강1'을 가장 좋아한다. 김용택 시인은 내가 고등학교때 처음 만나게 된 시인이다. 어쩜 이렇게 자연의 소재를 가지고 멋진 시를 쓸 수 있을 까 감탄했다.
이 시집의 곳곳에 낙서의 흔적이 있다. 시를 읽다가 나도 한번 써볼까 끄적거렸지만 지우개로 지운 흔적이 많다. 연필로 써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민망할 뻔 했다.
'섬진강' 연작시는 이 세상에 김용택 시인의 존재를 알려준 시라고도 할 수 있다. '섬진강1'의 마지막 연을 옮겨 보겠다.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섬진강 1 중에서 -
제일 좋아하는 시구가 이 마지막 연에 다 모여 있다. 지리산과 무등산을 의인화시켜 생동감있게 표현한 점이 참 좋다. 이 시를 읽다보면 자연도 우리 사람인 것 같아, 진짜 사람을 대하는 것 마냥 괜시리 마음에 온기가 든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섬진강은 이렇듯 자연을 사람처럼 만나고 싶을 때 읽는 시다.
할머니의 무릎팍처럼 자연이 정겨워지는 시다.
이 시집을 읽고 나서는
저녁노을은 이마에 꿀밤을 한 대 맞고 벌겋게 부어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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