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기초,조경국
이 얇은 책<필사의 기초>가 주는 독서의 기쁨은 실로 크다. 필사의 기초부터, 필사를 해야하는 까닭. 필사를 습관처럼 했던 역사속 인물들의 이야기. 필사와 관련된 각종 책들의 목록이 담겨있다. 가끔 필사를 하기도 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니 다시 옮겨적고 싶은 충동이 인다. 물론 만년필을 구매하고싶은 충동도 일렁인다.
나는 블로그에 필사를 한다. 물론 직접 손으로 꾹꾹 눌러쓰는 필사보다야 그 맛은 떨어지겠지만...
필사는 가장 순수한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이룬 문장의 활자를 그대로 써서 옮기며 곱씹는 행위죠. 더디고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만 어떤 독서법보다 큰 만족감을 줍니다.
-39쪽-
추사 김정희는 <완당전집>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서법은 사람마다 전수받을 수 있지만, 정신과 흥취는 사람마다 자신이 스스로 이룩하는 것이다. 정신이 없는 글은 그 서법이 아무리 볼 만해도 오래 두고 감상하지 못하며, 흥취가 없는 글은 그 글자체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고작 글씨 잘 쓰는 기술자라는 말밖에 듣지 못한다. 흉중의 기세가 글자 속과 행간에 흘러나와 혹은 웅장하고 혹은 웅장하고 혹은 넉넉하여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어야 하는데, 만일 겨우 점과 획에서만 글씨의 기세를 논한다면 아직 한 단계 멀었다 할 것이다."
글씨 쓰는 법은 전체를 보아야지 단순히 점과 획을 어떻게 그었나를 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단정하게 문장을 옮겨 쓰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누군가에게 뽐내기 위한 목적으로 필사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66쪽-
이태준 선생은 여러 권 노트를 두고 썼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작품의 실마리를 찾고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무서록>에 나오는 '제재'입니다.
"잡기장이 책상에 하나, 가방에나 포켓에 하나, 서너 개 된다.
전차에서나 길에서나 소설의 한 단어, 한 구절, 한 사건의 일부분이 될 만한 것이면 모두 적어 둔다.
사진도 소설에 나올 만한 풍경이나 인물이면 오려 둔다.
참고뿐 아니라 직접 제재로 쓰이는 수가 많아 나는 사건보다 인물을 쓰기에 좀 더 노력하는데 사진에서 오려진 인물로도 몇 가지 쓴 것이 있다.
제재에 제일 괴로운 것은, 나뿐이 아니겠지만 가장 기민하게, 가장 힘들여 취급해야 할 것일수록 모두 타산지석으로 내어던져야 하는 사정이다."
-104~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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