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없는 맑은 날 바라본 바다와, 맑고 파도가 거친 날 바라보는 바다가 똑같을 순 없다. 물때에 따라서도 바다의 느낌이 달라진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서 바다를 보아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할 것 같은 평범한 풍경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풍경을 떠올리고 그 순간을 기다리다 보면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상상력이 빈약한 사진가는 세계적인 명승지를 찾아 나선다 해도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굳이 사진으로 작업할 이유가 없다. 그곳에 가서 풍경을 직접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시간과 돈이 없어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작품이라고 과대 포장을 할 필요가 없다. 정보를 위한 사진이라면 오히려 동영상이 효과적이다. 바다 사진을 찍더라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본다는 행위에도 육감이 동원되어야 한다. 만져보고 느껴보고 들어보고 맡아보고 쳐다보고 난 후 종합적인 감동이어야 한다. 일출과 일몰 사진을 통해 내가 감상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둥근 해가 떠오르고 넘어가는 과정의 풍경뿐만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그 감동까지 함께 나누고 싶다.
그래서 난 사진에 제목 붙이는 것을 거부한다. 전시회를 열 때도 전체 제목만을 고집한다. 사진마다 제목을 붙임으로써 감상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 설명을 부탁해오면 단호히 거절한다. 설명할 수 있으면 글로 표현했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기에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주관만을 강조해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다 보면 감상자의 감동이 줄어들 수 있다.
-김영갑<그 섬에 내가 있었네>134쪽~135쪽-
이 책을 읽으며 산다는 것과 예술, 작품, 사진,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독서모임 조 쌤이 선물해주신 책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연말이 되니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그때 마침 이 책을 받았다. 많은 위로가 됐다. 책의 저자인 김영갑 씨의 갤러리를 찾아가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의 사진에 대한 열정과 사랑,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몰입을 떠올린다. 삶의 모습들과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찰칵 찰칵. 하루 하루, 나는 무엇을 향해 집중해서 셔터를 누르고 있을까. 어두컴컴한 생각들을 몰아내고, 삶이 주는 행복과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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