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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로 잡히는 시.
오은의 '나'. 2019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에 실렸다.
나
오은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화장실에 갔다
혼자는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었다가
사람들 앞에서는
왠지 부끄러운 것이었다가
혼자여도 괜찮은 것이
마침내
혼자여서 편한 것이 되었다
화장실 겨울은 잘 닦여 있었다
손때가 묻는 것도 아닌데
쳐다보기가 쉽지 않았다
거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아무도 보지 않은데도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볼꼴이 사나운 것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차마 웃지 못할 이야기처럼
웃다가 그만 우스꽝스러워지는 표정처럼
웃기는 세상의 제일가는 코미디언처럼
혼자인데
화장실인데
내 앞에서도 노력하지 않으면 웃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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