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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2017 독서노트(26)김훈의 <공터에서>, 밑줄 그은 문장 적막한 세상에서 몸 하나 비빌 대를 찾고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호롱불조차 켤 수 없는 마음은 캄캄할 까. 환할까. 삶은 개별적이다. 힘들었겠다. 힘들다. 이 두 표현 사이에서 서로의 삶을 위로한다. 김훈의 장편소설 를 읽으며 엄습한 생각이다. 아버지는 삶에 부딪혀서 비틀거리는 것인지 삶을 피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마장세는 알 수 없었지만, 부딪히거나 피하거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늘 피를 흘리는 듯했지만, 그 피 흘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삶의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을 겉돌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노새나 말, 낙타처럼 먼 길을 가는 짐승 한 마리가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얼씬거리다가 그 너머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이 세상이 다시는 지분덕거릴 ..
김훈 산문집<라면을 끓이며> 밑줄 11월 15일, 꿀 주말. 김훈의 산문집를 펼쳤다. 읽다 말고.짜파게티 2봉지를 사서 끓여먹었다. 4분의 기다림은 설렘이었다.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면을 후루룩 삼켰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면 위에 올렸다. 혼자 있는 자취방에 쩝쩝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쩝쩝. 후루룩. 짭짭. 후루룩. 쩝쩝. 자취남이 삶의 기운을 회복하는 소리이기도 하다.이 산문집에 나오는 문장들은 밥알같다. 꼭꼭 씹어먹으면 좋다. 김밥의 가벼움은 서늘하다. 크고 뚱뚱한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서, 토막난 내용물이 쏟아져나올때 나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15쪽-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그외 모든 시간 속에서 맛..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밑줄 그은 문장 김훈과 박래부가 맨땅을 맨발로 돌아다니자는 마음으로 기록한 문학지도.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김훈, 박래부의 문학기행 하나'를 펼치고, 읽다가, 262쪽에 이르러 무언가 가슴 한 구석에 눈물이 젖어드는 것 같았다. 이 느낌의 정체는 뭘까.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 / 뒷다리 두 개를 펴고 발발 떨었다 /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 나는 죄될까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 놀이가 마땅하지 않는 산골 아이가 무료에 겨워 무심히 장난질 한 뒤의 놀람과 후회의 마음이 아름다운 감수성으로 전해지는 이 시의 필자는 당시 3학년이던 백석헌군이다. 산문집 '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에서의 그는 버섯의 일종인 '후래기'를 무섭고 깊은 산에서 딴 후 그 돈으로 소주 한 병을..
김훈 기행산문집<풍경과 상처>, 문장맛 느껴보시라 김훈의 기행산문집. 이 책을 읽는 기쁨은 문장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재미에 있다. 김훈 문장의 맛은 쓰기도 하고, 사무치기도 하고, 톡 쏘기도 하고, 입안과 머릿속이 벙벙해져서 어렵기도 하다. 이런 기행산문집은 어떻게 리뷰를 남겨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밑줄그은 문장들을 나열하는 게으름을 피울 수 밖에. 밑줄 그은 것들은 가슴이 시키는대로 한 것도 있고, 나도 모르게 아무 생각없이 그은 것도 더러 있다. 바위를 이렇게 묘사하는 사람은 김훈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바위는 집적된 면과 집적된 선으로 구성된다. 하나의 면이 흘러내리다가 뒤틀리고 포개지면서 또다른 면으로 전환된다. 이 면들의 뒤틀림과 이어짐 그리고 포개짐의 전환을 이끌면서, 그 전환의 윧동이 하늘로 치솟아 고준을 이룬다.- 44쪽, - 소설 을 ..
김훈 소설 <흑산>, 삶은 무엇인가하고 들여다보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반추하는 동물 소를 닮은 책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반추하는 동물 소를 닮은 책 1. 박웅현의 책은 반추하는 동물 소를 닮았다텁텁한 방구석에서 '우유속에 모카치노 커피'를 홀짝이며 이 책을 읽었다.책를 읽노라면 소 한마리가 되어 여물을 꼭꼭 씹어먹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전에 만났던 문장들을 곱씹게 되고 새로운 의미를 느끼며 반추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광고인 박웅현씨는 평소에 다독보다는 한달에 3권 정도의 책을 깊이 읽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언뜻 보면 저자 자신이 감명깊에 읽은 책에서 엑기스 문장만을 뽑아 수록한 책같지만, 평소 책 한 권일지언정 꼼꼼이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쓰기 어려운 책이다. 이 책은 경기창조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인문학 강독회의 내용을 모아 묶어 낸 것이자, 저자가 ..
이별의 감정을 헤짚는 책, 한귀은의 <이별리뷰> 장마철이라 그런지 빗방울들의 폭격이 무섭다. 고시원의 쥐알만한 창문밖으로 비 내리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이 책 한권을 펼쳤다. 하얀색 배경에 흑백사진을 인쇄한 표지가 매혹적이다.이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이 책을 만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책 제목이 빗소리와 어울리는 '이별리뷰'다. 이별의 오만 감정과 감각들을 책을 통해 리뷰하는 형식을 취하는 이 독특한 책. 저자인 한귀은씨가 자신이 읽었던 책들의 구절을 짚어가며 이별의 거의 모든 것을 되새김질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별의 경험이 많지 않기에 이 책 속의 모든 이별들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책을 읽다가 '사랑'은 '이별'을 임신(?)하고 있는 임산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랑은 생명체가 발을 톡톡 차듯 신기하다가도, '이별'이 한 연인..
삶의 무늬를 찍어내는 셔터소리 / 바다의 기별 / 김훈 바다의 기별 / 김훈 읽다말고 그의 보석같은 문장을 옮겨적어 본다. 소라 껍데기를 닮은 책. 가만히 그의 문장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청명한 소리가 들려온다. 문장은 때론 읽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을 수도 있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론 타이르는 할머니 목소리처럼 가끔은 절간의 풍경소리처럼 퍼지는.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 바다의 기별中 - 닿지 못하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등대는 어쩌면 바다를 가슴에 품고 있을 수도 있고, 만져지지 않는 밤하늘의 별 하나 하나도 사랑의 모습일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