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갈 곳을 잃었을 때 책을 읽는다. 펜을 준비한다. 신영복의 <담론>. 빨간 줄을 그어 놓은 문장들이 있다.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펜을 갖다대고야 마는 구절. 뭔가 가슴으로 느끼는 게 있어서일듯. 책 100권을 대충대충 리뷰하자는 목표를 세웠으나 2017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쉽지 않다. 대충 대충 리뷰를 남기니 편하다. 독후감이 숙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신영복의 <담론>을 밑줄 그었다. 추운 겨울 날, 방안에 움크려 그의 글을 곱씹는다.
"알튀세르의 비유가 신랄합니다. "히말라야 높은 설산에 사는 토끼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동상이 아니었습니다. "평지에 사는 코끼리가 자기가 크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부려서 하는 일이 자기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사람과 자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64쪽-
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변방입니다. '성찰'은 자기중심이 아닙니다. 시각을 자기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 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우며, 자기의 존재를 상대화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절제'는 자기를 작게 가지는 것입니다. 주장을 자제하고, 욕망을 자제하고, 매사에 지나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미완성'은 목표보다는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합니다. 완성이 없다면 남는 것은 과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네가지의 독목은 그것이 변방에 처할 때 최고가 됩니다. '변방'이 득위의 자리입니다.
-72쪽-
인간관계는 사회의 본질입니다. 사회에 대한 정의가 많지만,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근대사회, 자본주의 사회, 상품사회의 인간관계는 대단히 왜소합니다. 인간관계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도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보면 인간적 만남이 대단히 빈약합니다. 이양역지를 통해서 확인하려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인간관계와 사회성의 실상입니다.
-108쪽-
진정한 즐거움이란 독락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여민락입니다. 민본사상의 문화적 버전이라 할 만합니다.
-114쪽-
맹자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확충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순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위僞를 통해서 즉 인간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 선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맹자는 확충이고 순자는 교육입니다. 순자가 교육철학자인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16쪽-
대변약눌大辯若訥도 같은 뜻입니다. 최고의 언변은 마치 말을 더듬는 듯하다고 합니다. 눌은 말 더듬는다는 뜻입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듣는 사람이 신뢰하게끔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화려한 언어를 동원하거나 청산유수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말을 진정성이게 받아들이게 하는 경우가 대변大辯임은 물론입니다.
-127쪽-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의 생각에 갇혀서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다른 것들을 판단합니다. 한 개인이 갇혀 있는 문맥 그리고 한 사회가 갇혀 있는 문맥을 깨닫는다는 것은 어쩌면 당대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시대를 역사적으로 바라보면 그 시대가 갇혀있던 문맥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당대 사회를 성찰한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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