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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리뷰116

PD가 PD라는 직업을 강추하는 이유 - KBS 박은희 피디님 "체력은 국력이다? 방송 PD는 체력이 능력이에요!"라고 외치는 KBS 과학까페 박은희 PD님을 강의실에서 만났다. 씩씩한 목소리에 검은 안경테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 PD다. 다큐멘터리 PD는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좋아해야한단다. 모험을 좋아하는 그녀에게는 딱 맞는 직업이었다. ▲ 박은희 PD님이 유쾌하게 강연을 하고 계신다. ▲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 그녀는 '50번째 생일'이라는 환경다큐멘터리를 찍기위해 20여개국을 돌아다녔다. 한번은 아마존에서 찍어야 하는 다큐멘터리의 촬영 허가를 맡기위해 브라질에 혼자 다녀오기도 했다. 게다가 빙하가 녹는 장면을 찍기 위해 남극 세종기지를 찾아간 적도 있다. 그야말로 지구를 걸어서 한바퀴 반을 돌 수 있을만큼, 에너지가 넘칠 것.. 2010. 8. 26.
언론인이라면 갖춰야 할 10가지 자세 - 대덕넷 이석봉 대표님 흐린 하늘을 곁에 두고 사과대 강의동 201 강의실엔 노래 한 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노래 제목은 김동률의 '출발'.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중략)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중략)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져도 내 길을 걸어가네 (중략)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난 가끔 그리워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넓은 세상으로"- 김동률 노래 출발 中 -.. 2010. 8. 24.
옥천신문은 꽃다운 22살 청춘! 한 지역언론의 꿈 곧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날씨다. 옥천신문 이안재 대표님을 만나기 5분전. 나는 마운틴 듀를 마시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어, 드디어 대표님께서 강의실에 들어오셨다! 옅은 분홍빛 와아셔츠, 가슴쪽에 펜 한자루와 코 옆에 난 검은 점이 인상적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단단해 보이시는 얼굴이다. 대표님의 환한 미소가 즐거웠다. 옥천을 취재했던 오랜 세월동안, 그 지역의 햇살과 바람이 수십번도 머물렀을 미소다. "여러분 옥천에 대해서 잘 아세요? 우리나라 지역언론의 역사는 23년이 되었어요.1988년년에는 홍성신문이,1989년엔 옥천신문이 태어났거든요 " 생각보다 옥천신문은 젊었다. 나처럼 20대를 보내고 있다니...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 옥천신문은 지금 22살, 꿈많은 시기 사람으로 치면 옥천신문은 .. 2010. 8. 23.
신문기자가 되면 좋은 점 6가지, 김태희 국민일보 편집부장 나는 매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4학년이다. 막연하게 언론인을 향한 꿈을 키워왔고, 각종 대학생 명예기자 활동을 통해 인터뷰와 취재 그리고 블로그 포스팅을 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게 과연 내 길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미래에서 '나'라는 사람이 시간여행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10년후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넌지시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스티븐 호킹이 시간여행은 할 수 없다고 했던가?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벌써 미래로부터 온 방문자들이 있었을 것이라나.. 하지만 다행히도 미래로부터 온 방문자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선배님이 오셨다. 바로 국민일보 김태희 편집부장님. 후배들과의 만남을 위해 휴가까지 내신 열정 선배님이시다. .. 2010. 8. 23.
17년전 초등학교 동무들에 띄우는 글 내가 다니던 정읍 영산초등학교는 한 반에 20명 정도였을까?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어서인지, 학년이 올라갈 때도 계속 그 동무들과 같은 반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때 그 이름들을 하나 하나 기억할 수 있다. 비록 중간에 전학을 가서(정읍남초등학교) 함께 졸업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명서, 정우, 율궤, 충만, 호진, 호준(지금은 하늘 나라에 있는 친구), 정은, 기은, 희숙, 영우, 명준, 지숙, 종성, 선화 1, 선화 2, 아라, 은미, 태정, 주희, 금자,수지, 재훈 이 동무들과 봄, 가을소풍만 하더라도 한 6번은 함께 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소풍을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 말해주지 못하겠다. 왜냐면 그 때는 학교 근처 아무 뒷 산이나 무작정 올라갔기 때문이다.^^; 뭐 선생님들께서 나름대로.. 2010. 8. 6.
아들아,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다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들아,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다." "예?"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그날 따라 어머니는 힘든 일이 있으셨는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셨습니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인가 했더니, 바로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저 멀리 강원도에서 전라도로 시집 온 어머니는 일년에 한번 외갓집에 갈까말까 하십니다. 어쩔때는 1년에 한번도 못가실 때가 있지요. 하루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통닭가게 일때문에 그렇지요. 외할머니 틀니를 해드려야 하는데 돈이 없다며 늘 마음 아파하시던 어머니. 외할머니 옷 한벌 좋은 놈으로 해다 드리고 싶은디 언제 외가집에 간다냐하시며 한 숨을 푹푹 쉬던 어머니입니다.아들인 저는 잊고 있었습니다. .. 2010. 8. 2.
아들이 대신 쓰는 부모님 자서전 저희 어머니는 통닭가게를 15년동안 운영해 오셨습니다. 그전에는 양계장을 운영하며 닭과의 질긴 인연을 이어오셨죠. 더불어 살아오며서 닭똥같은 눈물을 여러번 흘리시기도했습니다. 그중에 저때문에 흘린 눈물도 있겠지요. 그러다보니 어머니의 삶은 왠지 닭을 닮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음 글은 예전에 월간샘터 부모님자서전 코너에 투고한 글의 원본입니다. 닭을 닮은 저희 어머니 이야기이지요. 어머니 자서전을 짤막하게 아들인 제가 대신 써보았습니다. 하루종일 닭처럼 두발로 서계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닭을 닮으셨죠. 아버지와 함께 통닭가게를 꾸려 온지도 언 14년. ▲ 부모님께서 15년째통닭가게를 운영해오셨습니다 매일 자그마한 가게 안에서 닭처럼 두 발로 서 계셔요. 지난 삶을 돌아보아도 닭과 함께한 시간이 많았지요... 2010. 7. 28.
영화배우 공형진의 꿈이야기, 죽는 순간까지 배우이고 싶다 죽는 순간까지 영화배우이고 싶은 사람, 공형진 6월 4일 금요일, 영화배우 공형진씨가 충남대학교 캠퍼스에 왔습니다. 언제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본다는 건 가슴벅찬 일입니다. 그중 영화배우를 실제로 본 건 공형진씨가 두번째 입니다. 몇년 전 군복무시절 휴가복귀하다가 영화배우 김수로씨를 본 이후로 말이지요. ▲ 6월 4일 금요일, 충남대학교에 공형진씨가 찾아왔습니다. 이 날 강연을 통해 그의 인생철학과 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가 이루고 싶은 꿈 세가지 이야기는 배우 공형진을 더욱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주었지요. "제 꿈은 세가지 입니다. 첫째, 죽는 날까지 배우로 사는 것 둘째, 배우로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담은 나만의 작품 하나를 만드 는 것 셋째,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싶.. 2010. 6. 5.
고혜성, 인생의 밑바닥에서 개그맨 그리고 자신감대통령이 되기까지 6월 4일 충남대 대학생 CEO과정 샌드위치 사장학(민광동 교육컨텐츠기획 전문가 기획) 여섯 번째, 고혜성 편(2000년 KBS 특채 개그맨, 現 자신감코리아 대표)! "대한민국에 안되는 게 어딨어, 다되지" 6월 4일, 고혜성씨가 특유의 유행어' ~안되겠니?'로 강연장을 사로잡았습니다. 깔깔깔.하하하. 호호호.꺄르르르르. 학생들은 배꼽을 잡느라 정신없었죠. 역시 전직 개그맨답게 유머있는 화술과 큰 입에 나오는 시원한 웃음이 매력적이셨습니다. 반면 그렇게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능력뒤에는 힘겨웠던 지난 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비록 KBS 개그맨 특채로 개그콘서트에 들어가 제 2의 삶을 살게 되었던 그였지만, 지난 날은 굴곡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첫번째 위기는 간판일을 하던 시절에찾아옵니다. .. 2010. 6. 5.